[스켑틱]Theme MBTI는 틀리는 법이 없지!


“생각보다 MBTI 잘 맞네?”
점쟁이보다 신통한 MBTI의 능력에 대한민국이 매료되었다. 각 성격에 맞는 음식은 물론 이제는 반려동물도 골라준다. 연인 간 궁합을 봐주기도 하고 적성검사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직업을 정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신입 사원을 뽑을 때까지…
MBTI는 나도 모르는 나를 어떻게 그렇게도 정확히 파악하는 걸까? 미신과 사이비 과학을 유쾌하게 비판해온 오후 작가가 이번에는 MBTI 신드롬을 해부한다. 그는 MBTI의 허술한 이론적 근거, 자기보고 검사의 특징, 성격 유형화의 문제를 근거로 왜 MBTI가 틀리는 법이 없는지 추적한다.



MBTI는 얼마나 믿을만한 가요?


MBTI 검사의 4가지 지표. MBTI는 이 지표들의 조합에 따라 사람들을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나눈다.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교사였던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가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의 성격 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심리 검사다.
MBTI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칼 융’이라는 이름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칼 융은 심리학 성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니까 그 이름값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심리학이 태동한 당시에는 인간 심리를 파악할 만한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우연이나 추측, 개인 경험에 많이 의존했다. 특히 융은 심령술이나 주역 등 수많은 미신에 심취했고, 이를 자신의 연구에 도입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렇다보니 현대 심리학에서 프로이트나 융의 연구를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선구자로서 아이콘이 됐을 뿐이다. 그러니 융의 이론에 기반한 MBTI를 그대로 믿는 것은 토대를 잘못 세운 건물과 비슷하다. 아무리 모래로 견고하게 성을 쌓아도 파도 한 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또한 MBTI는 자기보고 형태의 심리 검사기 때문에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 전문가나 주변의 관찰이 아니라 각 질문에 대해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것이기에 일시적인 기분 변동이나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니 MBTI는 다 틀렸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또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Big5 검사를 창안한 코스타Paul Costa Jr.와 맥크레Robert McCrae는 상호 연구를 통해 MBTI의 4가지 지표가 Big5의 5가지 지표 중 4가지와 연관성이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러니 Big5의 공신력을 인정한다면, MBTI도 어느 정도는 성격 파악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MBTI가 지난 50년간 나름 객관적인 데이터를 쌓아왔으니 연구 자료로서 완전히 무가치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왜 한국인은 MBTI에 열광하는가?


 

한국은 평균 교육 기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축에 속하고, 문맹률도 최저 수준이다. 그러니 국민 개개인의 이해력이 높고 미신이나 유사과학, 음모론에 빠질 확률도 낮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크게 흥하는 미신이 있다. 바로 혈액형 성격론, 띠별 또는 별자리 운세, 그리고 MBTI다. 이들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바로 규격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왜 Big5보다 MBTI가 한국에서 더 흥하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혈액형 성격론과 띠별 운세를 좋아했던 심리가 그대로 MBTI로 이어진다. 규격화하지 않은 Big5의 장점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다(Big5의 수치화가 점수라면, 한국인들은 줄 세우기를 하며 즐겼겠지만, Big5의 숫자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구글 트렌드로 MBTI 검색 빈도를 비교해보면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다. 한국이 100이라면 대부분 국가가 10 정도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나라가 21니, 한국이 사실상 MBTI 시장의 VVIP 소비자라 할 수 있다.

 

그럼 왜 한국은 이런 규격화된 미신에 열광할까? 나는 어쩌면 이런 현상이 우리의 집단주의적 성향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MBTI는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긴 하지만, 혈액형 성격론이나 띠별 운세 같은 미신은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인기가 많다. 그리고 이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집단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우리는 어딘가 속하지 않으면 너무 불안한 나머지 자신을 규정짓고 싶어 한다. 심지어 한국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도 캐릭터의 직업이 명확한 걸 좋아한다. 육성에 있어서 자유도를 그렇게까지 원하지 않는다. 완성된 모습이 정해져 있기를 바란다. 스킬 트리는 얼핏 보기에는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게임 커뮤니티에는 공략이란 이름의 정답이 이미 올라와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유로운 육성이라는 환상 속에서 이미 정해진 국민 트리로 캐릭터를 키운다. 모두가 정해진 방식으로 게임을 한다. 종종 스킬과 기술 연마에 따라 직업까지 만들어내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 있는데, 평론가나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도 흥행에서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아싸가 되느니 인싸의 끄트머리에라도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더욱이 MBTI는 나쁜 것이 없다. 혈액형 성격론만 해도 설명을 읽어보면 위아래가 있지만, MBTI는 성격을 구분할 뿐 모든 유형을 좋은 말로 포장한다.

 

그럴듯한가? 만약 한국의 집단주의적 경향이 규격화된 미신의 유행을 이끌었다는 나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당신은 MBTI를 믿는 것과 비슷한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 해석은 순전히 나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을 뿐 어떤 증거도 없다. 사실상 자리에 앉아서 머리만 굴려서 쓴 억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해와 고민이 꼭 쓸모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회 혹은 어떤 집단에, 당신이 보기에 비이성적인 무언가가 크게 흥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중요한 건 대체 한국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교육을 이렇게 많이 받은 스마트한 사람들이 이런 미신에 빠지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파악해야만 세상과 사람 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비단 미신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사회의 수많은 비이성적인 행동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비웃는 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누군가 본인이 생각하기에 다소 잘못된 걸 믿는다고 해서 색안경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누구나 조금씩은 이상한 걸 믿고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심지어 《스켑틱》을 읽는 당신조차 말이다.



스켑틱 27호 노화에 도전하는 과학 



오후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자유기고가이자 칼럼니스트. 수학을 잘했지만 예술을 좋아한 관계로 문과를 선택했다. 문과든 이과든 예체능이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과학은 물론 미신, 마약, 영화 등 폭넓은 주제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러다. 지은 책으로 미신과 가짜 뉴스의 민낯을 낱낱이 폭로한 《믿습니까? 믿습니다!》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