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이온 환상에 빠져버린 사회


음이온이 만병통치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엉터리 음이온 괴담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음이온이 신체의 균형과 힘을 개선 하고, 신진대사를 촉진 및 증진하며, 신경 안정이나 피로회복 효과 를 낸다는 것이다. 공기청정기, 에어컨,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은 물 론이고 화장품과 기능성 속옷에서 침구류에 이르는 거의 모든 가 정용 공산품이 음이온의 효능을 자랑한다. 특허청도 음이온 괴담을 부추긴다. 음이온 관련 특허가 무려 5855건이나 된다는 사실은 우 리가 ‘음이온 공화국’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런 음이온 이 실제로는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심각한 사회적 혼란과 갈 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음이온 괴담의 정체

음이온 괴담은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본 의 괴담에는 ‘negative ion’이 건강에 좋다는 엉터리 주장이 있다. 그런데 화학에서는 음전하를 가진 음이온을 ‘anion’이라고 부른다. 이런 음이온 괴담은 일본에서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게 확 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의 교묘한 말장난이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음이온 괴담은 단순히 말장난을 넘어서 실제 과거 과 학자들의 주장을 교묘하게 왜곡하기도 했다. 괴담은 음극선에 대 한 연구로 190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물리학자 필리 프 레나르트 Philipp Lenard 가 제시했던 ‘레나르트 효과’를 들먹인다. 이는 공기 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공기역학적인 이유로 전하를 가 진 입자로 갈라지는 ‘분무대전 噴霧帶電 ’ 또는 ‘폭포 효과’라고 부르 는 현상이다. 레나르트 효과를 폭포 효과라고 부른다고 해서 실제 로 폭포에서 레나르트 효과가 관찰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레나르트 효과는 폭포에서 음이온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된다는 이론도 아니고, 그런 음이온이 사람의 건강에 긍정적인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아니다. 오히려 레나르트 효과는 구 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물방울이 대기를 통과해 떨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기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번개와 천둥이 발 생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과학 이론이었다는 뜻이다.


울창한 숲속의 공기 중에 음이온이 많다는 주장도 그 의미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음이온 괴담은 숲속의 공기 1ml에 2000개 이상의 음이온이 있다고 강조한다. 과학 상식이 부족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음이온이 엄청나게 많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주장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화학에서 배우는 이상기체 상태방정식에 따 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보통 상온과 상압에서 공기를 비롯한 기 체 1mol은 대략 20l(2만ml)의 공간을 차지한다. 즉, 이는 1ml에 들어 있는 공기 분자의 수는 무려 3×10 19 개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렇게 많은 공기 분자 속에서 2000개의 음이온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숲속 공기에서 음이온을 찾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보다 훨씬 더 어렵다. 오히려 음이온 괴담은 숲속에서는 음이온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 이다. 더욱이 숲이 쾌적하게 느껴지는 것은 음이온이 많아서가 아 니라 먼지와 소음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 음이온의 건강 효능

세상의 만물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에서 음전하를 가진 ‘음이온 anion ’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극에서 직접 전자를 공급받거나, 다른 원자 또는 분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전자를 제공받거나, 큰 분자가 음이온과 양이온 cation 으로 해리될 경우에 음이온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전하를 가진 음이온은 물리·화학적 으로 매우 불안정하므로 액체 상태의 물과 같은 특별한 환경에서 양이온과 음이온이 특정한 비율로 섞여 있는 경우에만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특히 분자들이 서로 떨어져서 빠르게 돌아다니는 기체 상태에서는 음이온이나 양이온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음이온은 건강에 좋고, 모든 양이온은 건강을 해친다는 인터넷 정보도 과학적으로 터무니없는 황당한 엉터리다. 화학물질 의 인체 영향은 원자나 분자가 가지고 있는 전하의 종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똑같은 음이온이라고 하더라도 수용 액에 함께 녹아 있는 양이온의 종류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염소(Cl) 음이온이 수소(H) 양이온과 함께 녹아 있는 수용액은 신맛이 나고, 그 양이 많아지면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똑같은 염소 음이온이 소듐(Na) 양이온과 함께 녹 아 있는 수용액은 짠맛이 나는 소금물이다. 우리는 매일 일정량의 소금물을 반드시 섭취해야만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음이온 공기청정기의 정체

음이온 광풍을 몰고 왔던 음이온 공기청정기는 사실 공기를 통해서 흐르는 전류의 코로나 방전을 이용한 오존발생기 ozonizer 였다. 공기 중에서 번개가 칠 때 공기 중의 산소가 깨지면서 오존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코로나 방전에서는 밝은 빛과 함께 특유의 소리가 발생한다. 흔히 전깃줄이 ‘합선’될 때 나타나는 ‘스파크’가 바로 코로나 방전의 결과다. 다만 공기청정 기나 에어컨에서는 코로나 방전 시스템을 통해 흐르는 전류의 양을 최소화해서 소비자가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오존이 살균력과 탈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학적 으로는 오존의 강한 산화력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다. 실제로 그런 오존을 실생활에 활용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컵 소독기, 역삼투 정수기의 저수조, 정육점의 육류 전시대에서 자외선램프로 발생시킨 오존을 이용한다. 다중이용시설의 화장실에 냄새 제거용 으로 작은 자외선램프를 켜두기도 했다.


그러나 실내 공기 중에 오존이 지나치게 많으면 인체에 치명 적인 문제가 생긴다. 특히 면역 기능이 취약한 눈과 호흡기가 취약 하다.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진실이다. 심지어 실외 공기 중 의 오존에 대해서도 경계를 한다. 그래서 대기 중의 오존 농도가0.12ppm을 넘으면 주의보를 발령하는 ‘오존 경보 제도’를 운영한 다. 태양 빛의 자외선과 자동차 배기구에서 배출되는 질소 산화물 등이 대기 중의 오존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환경부는 다중이용시설의 실내 공기 중의 오존 농도를0.06ppm 이하로 권고하고 있는 것도 오존의 인체 유해성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가정이나 승용차의 실내에 대해서는 규제를 시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 가정이나 자동차 실내에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다중이용시설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실내에 오존을 일부러 만들어서 살포할 이유가 없다는 뜻 이다.


음이온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을 사용했던 소비자들은 대부분 실내에서 비릿한 냄새를 기억한다.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비릿한 냄 새는 오존 특유의 냄새다. 오존주의보가 발령되는 경우에도 대부 분 사람은 오존의 냄새를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음이온 가전제품 을 장시간 작동해서 비릿한 냄새가 느껴진다면 실내의 오존 농도 가 주의보 수준인 0.12ppm을 훌쩍 넘어섰다는 뜻이다. 결코 권장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부작용 사례가 알려진 후에는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서 음이 온 기능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품에 부착된 버튼의 표 식만 사라졌을 뿐이다. 제조사들은 지금도 오존을 발생시키는 코로 나 방전 장치에 매달리고 있다. 특히 자동차용 공기청정기의 사정 이 매우 심각하다. 오존의 시간당 발생량을 0.05ppm 이하로 규제 하고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소비자 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정부가 오히려 엉터리 기업의 편을 들고 있 는 형국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당 발생량이 아니라 실내에 누적되는 오존의 농도다. 시간당 발생량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좁은 실 내에서 음이온 기능을 장시간 작동시키면 오존의 농도는 위험 수 준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방전 방식을 사용하는 공기청 정기와 에어컨에는 ‘오존발생기’라는 표식을 부착해서 소비자들이 오존의 유해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이제 음이온 환상에서 깨어나야 할 때

이제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는 음이온의 환상에서 확실하게 벗 어나야 한다.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 자체가 과학적으로 무 의미한 괴담이다. 우리가 숨 쉬는 실내 공기를 살균하겠다는 발상 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인식도 필요하다. 세월호 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가 습기 살균제 참사가 바로 실내 공기 살균에 대한 소비자의 왜곡된 인식 때문에 일어난 안타까운 일이었다.


과학 용어를 교묘하게 왜곡시키는 가짜 과학 마케팅은 과학 상 식을 갖추지 못하고 만병통치의 비현실적인 기적을 기대하는 소비 자의 주머니를 노린 비윤리적 상술이다. 정부도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음이온 괴담을 강조하는 모든 특허는 당장 취소를 시켜야 하 고, 공산품의 음이온 마케팅을 확실하게 차단해줘야만 한다. 물론 언론도 엉터리 가짜 과학을 부추기는 황색 저널리즘을 적극적으로 경계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도 변해야 한다. 건 강은 건강한 과학 상식과 노력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가짜 과학을 가려내지 못하면 아까운 재산을 잃고, 건강도 해치게 된다.



※ 본 글은 스켑틱 17호 〈음이온 환상에 빠져버린 사회〉에서 부분 발췌한 글입니다.  



스켑틱 17호 과학은 선악을 다룰 수 있는가




  이덕환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미국 코넬대학교 화학과에서 박사 학위 취득. 프린스턴 대 학교의 연구원을 거쳐 서강대학교 화학과와 과학커뮤니케이션협동과정에서 교수로 재 직 중이다. 전공은 비선형 분광학, 양자화학,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저서로는 《이덕환 의 과학세상》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먹거리의 역사》,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아인슈타인》,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거인들의 생각과 힘》, 《강아지도 배우는 물리학의 즐거움》, 《양자혁명》 외 다수가 있으며, 대한민국 과학문화 상(2004),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상(2006),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8)을 수상 했다.